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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재봉틀 전시장?… 여긴 옷 가게입니다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소비자들과 브랜드가 소통하는 최적의 수단이 되고 있는 매장 인테리어.
시선을 사로잡는 브랜드 매장을 꼽아 인테리어 속 숨은 비결을 들었다.

    입력 : 2017.08.11 04:00

    브랜드의 얼굴 '매장 인테리어'

    '장인 정신' 담은 재봉틀
    클래식 제품 공수하려 빈티지 시장 싹싹 훑어… 전 세계 어떤 매장이든 재봉틀로 한쪽 벽 채워

    '디자이너의 철학' 담아
    1920년 문학 존경한 소니아 리키엘 뜻 따라… 프랑스 파리 매장에 5만여권의 책 배치

    욕실 같은 화장품 가게
    호주 뷰티 브랜드 '이솝', "제품 써 볼 수 있어야"… 개수대가 매장 필수품, 일부선 '물탱크' 조달도

    매장 입구 쪽 벽면을 꽉 채운 재봉틀. 낡고 오래된 재봉틀이 빼곡히 진열된 모습은 중고 빈티지 가게 같기도 재봉틀 전시장인 듯도 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나는 건 영국 스트리트풍 스타일의 의상들. 영국 패션 브랜드 '올세인츠(Allsaints)' 매장이다. 런던 노팅힐의 포토 벨로에서도, 뉴욕 소호에서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도, 하남 스타필드에서도 재봉틀로 꽉 채워진 벽면을 똑같이 만날 수 있다.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소비자들과 브랜드가 소통하는 최적의 수단이 되고 있는 매장 인테리어. 시선을 사로잡는 브랜드 매장을 꼽아 인테리어 속 숨은 비결을 들었다.
    거대한 도서관처럼 꾸민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거리의 소니아 리키엘 매장. ‘지적인 보헤미안’이라는 브랜드의 철학을 드러내기 위해 5만여 권의 책으로 매장을 장식했다. / 소니아 리키엘
    거대한 도서관처럼 꾸민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거리의 소니아 리키엘 매장. ‘지적인 보헤미안’이라는 브랜드의 철학을 드러내기 위해 5만여 권의 책으로 매장을 장식했다. / 소니아 리키엘

    벼룩시장까지 뒤져 찾은 2만개 재봉틀

    1997년 영국 런던 카나비 스트리트에서 첫선을 보인 패션 브랜드 올세인츠가 택한 정체성은 200여년 역사의 재봉틀. 손바느질보다 5배 이상 빠른 '혁명'적 기계였던 재봉틀은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꼽힌다. 1851년 미국의 싱어(Singer)사(社)가 대량생산 하면서 의류 직물 산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올세인츠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올세인츠 관계자는 "영국 특유의 장인 정신과 재단을 선보이는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2009년부터 매장을 꾸미는 데 재봉틀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올세인츠가 보유한 재봉틀은 약 2만개. 그중 1만4000여개가 싱어의 클래식한 모델이다. 올세인츠 측은 "재봉틀 공수 팀이 따로 있어 영국 전역의 빈티지 시장에서 그러모으고 소량은 과거 올세인츠 일부 제품을 생산했던 터키 옛 공장에서 조달한다"고 말했다.

    브랜드 인테리어 중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건 2015년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거리에 들어선 소니아 리키엘 매장. 5만여권의 책이 들어선 거대한 도서관이자 북 카페로 매장을 디자인했다. 소니아 리키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줄리 드 리브랑, 아트 디렉터이자 잡지 '파라디(Paradis)'의 편집장인 토마 랑탈, 프랑스 유명 예술가 앙드레 사라이바가 협업해 만든 공동 창작물이다. 1920년 당시 영·미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던 파리 센 강의 좌완(리브 고슈·rive gauche)에 존경을 표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니트의 여왕'이라 불리며 여권 신장에도 앞장섰던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1930 ~2016)이 평소 강조했던 "지적인 보헤미안" 정신을 앞세워 매장으로 구현했다.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등 프랑스 문호들의 책을 비롯해 각종 빈티지 마켓에서 공수한 책들과 파리 외곽 포르트 클리냥쿠르 벼룩시장에서 가져온 가구 등도 매장에 비치됐다. 지난해 선보인 뉴욕 소호 매장에도 1만 5000여권의 책을 진열했고, 도쿄에 이어 서울 소공동 롯데 에비뉴엘 본점 매장도 벽면을 서점처럼 책으로 가득 채웠다.

    하나의 정체성, 지역별 개성… 수로(水路) 찾아 삼만리도

    ①재봉틀 가게가 아니다. 오래된 ‘싱어(Singer)’ 재봉틀로 매장을 꾸민 영국 패션 브랜드 ‘올세인츠(Allsaints)’ 삼성동 코엑스 매장. 이 브랜드는 전 세계 모든 매장에 재봉틀을 뒀다. ②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폰타나 밀라노 1915’ 서울 청담 매장. 내부에 유리벽을 세운 ‘매장 속의 매장’ 구조로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표현했다. ③프랑스 파리 리브고슈의 에르메스 매장. 수영장을 매장으로 변신시켰다. 바닥 타일에 수영장의 흔적이 있다. ④호주 뷰티 브랜드인 ‘이솝(Aesop)’은 매장에 꼭 개수대를 둔다. 손님들이 언제나 제품을 써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다. 사진은 서울 삼청점 풍경. ⑤‘엔트로피’를 주제로 꾸민 안경 브랜드 ‘젠틀 몬스터’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플래그십 스토어. / 무라구치 쇼코·각 브랜드 제공
    ①재봉틀 가게가 아니다. 오래된 ‘싱어(Singer)’ 재봉틀로 매장을 꾸민 영국 패션 브랜드 ‘올세인츠(Allsaints)’ 삼성동 코엑스 매장. 이 브랜드는 전 세계 모든 매장에 재봉틀을 뒀다. ②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폰타나 밀라노 1915’ 서울 청담 매장. 내부에 유리벽을 세운 ‘매장 속의 매장’ 구조로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표현했다. ③프랑스 파리 리브고슈의 에르메스 매장. 수영장을 매장으로 변신시켰다. 바닥 타일에 수영장의 흔적이 있다. ④호주 뷰티 브랜드인 ‘이솝(Aesop)’은 매장에 꼭 개수대를 둔다. 손님들이 언제나 제품을 써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다. 사진은 서울 삼청점 풍경. ⑤‘엔트로피’를 주제로 꾸민 안경 브랜드 ‘젠틀 몬스터’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플래그십 스토어. / 무라구치 쇼코·각 브랜드 제공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자주 들리는 이름이 있다. 바로 미국 건축가 피터 마리노(68). 모히칸 스타일 헤어와 검정 바이커 가죽 재킷을 항상 입고 다니는 그는 인테리어 디자인계의 '전설'로 꼽힌다. 샤넬을 비롯해 조르지오 아르마니, 루이비통, 디올, 제냐, 로에베 등 유명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 인테리어를 디자인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가장 사랑하는 디자이너로 꼽힌다. 1960년대 미국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과 어울리며 당대를 풍미했던 그는 "인테리어는 곧 브랜드 정체성"이라 외치며 각 브랜드의 전 세계 매장에 동일한 마감재, 바닥, 색상을 써 통일성을 주는 방식을 선보여 매장 디자인의 '교과서'가 됐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피터 마리노 방식'을 따라 하지만 그와 반대되는 매장도 있다. 30년 역사의 호주 친환경 뷰티 브랜드인 '이솝(Aesop)'.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는 "모두가 '하나'로 통일할 때 '같은 생각, 다른 표현'을 내건 이솝의 인테리어 디자인 명성은 전설적(fabled)이다"고 평했다. 이솝은 지역성과 역사, 문화적 차이점을 디자인에 반영한다. 예를 들어 뉴욕 첼시 매장은 뉴욕을 상징하는 신문 뉴욕타임스로 매장 벽면을 디자인하고, 천장에는 저명한 문학 잡지인 '파리 리뷰'를 붙여 장식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매장은 오슬로 대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성당 내부처럼 디자인했다.

    그럼에도 전 세계 거의 공통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개수대. 이솝의 공동 창립자 수전 산토스는 매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언제나 제품을 써보고 청결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초창기부터 개수대를 설치했다. 개수대가 브랜드 '정체성'이 되면서 수도관이 있어 반드시 물이 나오는 곳에 매장을 세우는 게 기본이 됐다. 현재 이솝은 국내에 삼청·한남 등 7개의 시그니처 스토어와 12개 백화점, 5개 면세점 매장을 가지고 있다. 일부 백화점처럼 수도관을 끌어올 수 없을 경우엔 어떻게 할까. 이솝 관계자는 "아침마다 물을 길어 물탱크를 채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매장에 흘러나오는 음악도 인테리어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직접 큐레이션한 음악을 전 세계 공통으로 튼다.

    매장은 곧 예술 작품

    국내에서 매장 디자인으로 줄곧 화제가 되는 건 안경 브랜드 '젠틀 몬스터'. 최근 재단장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플래그십 스토어는 '엔트로피'를 테마로 꾸며졌다. 에너지의 이동 방향성에 관한 것으로 복잡하고 무질서한 1층에서 위로 갈수록 정형화된다. 1층에선 거꾸로 서서 도는 나무 4그루가 있고, 3층에선 수많은 나무다리가 천천히 움직이며 작은 공을 밀어올린다. 안경과 직접 관련되진 않았지만 독특함을 내세우는 '젠틀 몬스터'의 브랜드 이미지를 공간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폰타나 밀라노 1915'는 국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면서 내부에 유리벽을 세워 숍인숍(매장 속의 매장) 구조로 정체성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동서양의 만남,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뜻한다. 이탈리아 가구 디자이너 실비아 마사가 이끄는 '실비아 마사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한 가구들을 배치했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샬럿 맨의 벽화, 제품 디자이너 야코포 포지니의 샹들리에로 꾸몄다. 산업 디자이너 톰 딕슨의 윙백 체어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포르나제티의 서랍장과 함께 우리나라 가구 디자이너 서정화의 작은 의자도 들어갔다. 바닥은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 메이드 아 마노에서 제작한 마조리카 화석 원재료의 타일로 이루어져 고대 예술과 현재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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