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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호텔 친화형 '호모 호텔리쿠스'

  • 장석주·시인

    입력 : 2017.07.21 04:00

    호텔은 영국에선 인(inn)이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오베르주(auberge)라 하고, 일본에서는 료칸(旅館)이라고 한다. 호텔은 여행자나 출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짧은 기간 동안 숙박을 하는 장소다. 호텔은 일상적 삶의 자리가 아니라 잠시 흐름을 멈춘 채 숨을 고르는 휴지부(休止符)의 장소다. 여름 시즌 때 서울 도심의 특급 호텔들은 숙박료를 할인한 여름 패키지 상품을 내놓는다. 모두들 먼 곳의 휴양지 혹은 해외로 휴가를 떠날 때 누군가는 패키지로 구매한 도심 호텔 방의 조명등 아래서 파스칼 키냐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휴가를 보낸다. 이때 호텔 방은 배들이 태풍이나 해일 따위를 피해 잠시 정박하는 항구와 같이 혹서와 소음에 지친 사람들의 임시 피난처일 테다.

    호텔 방에서 중요한 것은 침대다. 그곳이 수면과 휴식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까닭이다. 침대는 몸을 뉘는 사람의 머리와 등과 엉덩이를, 실존의 하중을 받쳐주는 존재의 받침대다. 침대는 현존의 기반이고 떠도는 주체에게 제공되는 은신처다. 로제 폴 드루아는 "침대는 단순히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공간이 취하고 있는 하나의 자세, 길쭉한 형상"이라고 말한다. 침대는 부유하는 존재를 한 점에 고정시켜 신체와 도구를 하나로 합체시키는 경험을 만든다. 그리하여 침대는 실존을 싣는 배, 꿈과 현실을 오가는 '우주선'이다.

    호텔의 방은 삶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 호텔 방은 늘 '새하얀 방'이고 누구의 소유도 아닌 채 펼쳐진 '중립지대'다. 호텔 방에 머물 때 아무런 '외현(外現) 기억'(일어난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일화 기억)이 쌓이지 않는다. 투숙자들은 낯선 호텔 방에서 '심리적 백지화'를 겪으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난다. 호텔 친화형 인간 '호모 호텔리쿠스'가 된다.

    호텔 방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행복할까. 극작가 유진 오닐(1888~1953)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의 한 호텔에서 태어난다. 순회공연을 다니는 연극배우인 부모를 따라 유소년 시절을 싸구려 호텔에서 보낸다. 젊은 시절엔 선원 노릇을 하며 여러 도시를 떠돌고 작가로 명성을 얻고서도 보스턴의 호텔에서 여생을 마친다. 평생 호텔 방들을 전전하며 산 유진 오닐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알코올중독과 회색 우울감으로 채색된 인생을 살다 죽음을 맞는다.

    호텔 방은 삶의 고착을 만들어내지 못한 임시 거주 공간, 닻을 내리지 않은 채 부유하는 장소다. 호텔 방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초연한 휴식만을 제공한다. 투숙객들은 신생아나 다름없이 백지의 기억을 갖고 그 방의 하룻밤 주인이 되는 것이다. 찰나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고착되려면 최소한 며칠에서 몇 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간 동안 머문 곳의 기억은 늘 얕고 희미하다. 여름 패키지로 짧은 휴가를 끝내고 호텔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우리는 호텔 방의 기억을 망각으로 밀어 넣고 금세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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