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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차 그가 사는 법… "크리에이터는 읽히면 죽지요"

방송 맛 들이면 본업인 가수는 제쳐놓기 십상인데, 해가 갈수록 그의 곳간엔 노래가 쌓여간다. 2010년 온라인 플랫폼 '월간 윤종신'을 만든 이후 8년째 매달 음원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아이돌 판치는 가요계에 담백한 발라드로 직구 날린 마흔아홉의 이 가수는 윤종신. 각종 예능 프로 종횡무진하며 '깐죽대는' 그 윤종신이다.

    입력 : 2017.07.14 04:00

    TV 밖 윤종신을 만나다

    가수·예능인·연예기획사·문화공간 운영·디지털잡지 발행인

    8년간 '월간 윤종신' 매달 음원 공개하고
    책·영화·미술가 소개 복합문화공간도 오픈

    '感 잡았다' 생각한 순간 창작자로선 감 잃은 것
    내 음악은 50代부터…

    TV 속 나는 '퍼포머'
    방송에서 안 찾으면 깔끔하게 관두겠다

    "곡명 '좋니', 음원=650만원, 아트워크+뮤비=124만5960원, 합계=774만5960원. 가수 나이 49세, 평균 차트 순위 100위권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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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의 윤종신 옆에 40대 후반의 윤종신이 섰다. 배경 사진은 2005년 10집 앨범 작업 때 사진작가 안성진이 뉴욕에서 찍은 작품이다. “20·30대는 경험하고 실패하는 시기, 창작자의 전성기는 40·50대예요.” 그래서일까, 40대의 윤종신이 30대의 윤종신보다 젊어 보인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적나라하다. 노래 한 곡 만드는 데 든 돈을 10원 단위까지 페이스북에 까발렸다. 초라한 음원 순위까지 공개하면서도 꿋꿋이 최소한의 마케팅만 할 것을 선언한다. 그런데 이 곡, 소문만 타고 공개 3주만인 지난 13일 차트 20위권까지 역주행했다. 아이돌 판치는 가요계에 담백한 발라드로 직구 날린 마흔아홉의 이 가수는 윤종신. 각종 예능 프로 종횡무진하며 '깐죽대는' 그 윤종신이다. 반전이다.

    2012년부터 매달 만드는 디지털 잡지 '월간 윤종신' 2017년 6월호 커버./월간 윤종신

    방송 맛 들이면 본업은 제쳐놓기 십상인데, 해가 갈수록 윤종신의 곳간엔 차곡차곡 노래가 쌓여간다. 2010년 온라인 플랫폼 '월간 윤종신'을 만든 이후 8년째 매달 음원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2012년엔 같은 이름의 디지털 잡지를 만들어 책, 영화, 미술 작가 소개까지 한다. 지난해 11월엔 서울 이태원의 작은 주택을 개조한 복합 공간 '월간 윤종신'을 열어 오프라인으로 실험을 확장했다.

    예능 '라디오 스타(라스)' 밖 '크리에이터' 윤종신이 궁금해졌다. 이태원 '월간 윤종신'에서 만난 그는 작달막했지만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눈빛이 예리했다. 지칠 줄 모르는 이 '문화계 에너자이저'는 브라운관을 벗어나자 웃음이 끼어들 틈 없이 진지했다.

    ―1990년 데뷔한 이래 27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방송인과 음악인 두 윤종신을 어떻게 운영하는가.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월간 윤종신' 두 축으로 나뉜다. 쉽게 말하자면 미스틱은 '남의 인생'을 위한 회사, 월간 윤종신은 '내 인생'을 위한 장치다."

    ―내 인생과 남의 인생이라니?

    "미스틱은 내가 만든 창작물, 내가 프로듀싱하는 사람을 위한 회사다. 남의 인생이니 함부로 할 수 없다. 흥행도 생각해야 하고, 투자자에게 손해 끼쳐도 안 된다. 신중해야 한다. 반면 '월간 윤종신'은 자본에 흔들리지 않고 내 맘대로 창작할 수 있는 '개인' 윤종신의 자유로운 영역이다. 혹여 있을 실패가 타인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되니 방어벽을 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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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월간 윤종신'에서 만난 그는 작달막했지만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눈빛이 예리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방송에서 얻은 인기로는 만족이 안 되던가. 왜 계속 실험을 하는가.

    "연예계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결국 덧없는 게 팬덤(열성 팬)이더라. 팬덤은 태생적으로 정점 찍고 내려올 수밖에 없다. 어려야 유리하고. 그래서 '팬덤 비즈니스'보다는 '성향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향 비즈니스가 뭔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위한 비즈니스. '월간 윤종신'이 그 무대다. 내 이름으로 8년간 콘텐츠와 내 생각을 '던졌다'. 그러니 이 플랫폼 자체가 지닌 성향이 생기더라. 소리 소문 없이 모인 사람이 50만명 정도 된다. 팬덤은 자꾸 요구하고 뭔가를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인데, 성향이 맞아서 들어오는 사람은 기대하는 게 적다. 배신·배반하지 않는다. 가볍게 들르지만 내게 정보를 충분히 준다."

    ―어떤 정보 말인가.

    "들어오는 이용자들이 어떤 콘텐츠에 반응하는지 그 자체가 정보다. 정보는 내게 가장 큰 재산이다. 콘텐츠의 성공 공식엔 유효기간이 있다. 정보를 기반으로 감각적으로 트렌드를 읽고 다음 걸 준비해야 한다. 크리에이터는 읽히면 죽는다."

    ―끊임없이 새롭기가 어디 쉬운가.

    "우리 머릿속엔 늘 새로운 생각이 많다. 안 될까 봐 끄집어 내지 못할 뿐. 그런데 안 된다는 건 대중을 섣불리 판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대중은 때론 백치고 때론 천재다. 창작자가 '난 감 잡았어' 생각하는 순간 실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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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문을 연 이태원의 복합문화공간 ‘월간 윤종신’. 온라인 실험이 오프라인으로 확장됐다. / 월간 윤종신

    ―창작자가 피해야 하는 게 있다면?

    "패턴화하는 것. 나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3~4년 전 김예림·박지윤이 성공하면서 같은 패턴으로 밀었다가 실패했다. 대중이 좋아하는 걸 좇아 했더니 계속 망했다. 사람들 취향에 맞추는 건 '업자(業者)'이고, 내가 좋아하는 걸 던지고 설득하는 게 '아티스트'란 걸 깨달았다."

    ―TV 안 윤종신과 TV 밖 윤종신이 많이 다르다.

    "하하, '라스'에서 이렇게 진지한 얘기 했다간 벌써 채널 돌아갔다. 방송에서 윤종신은 창작자가 아니다. 철저한 '퍼포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퍼포머 윤종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방송에선 각자 팔아야 할 몫이 있다. 소비자(시청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만큼만 보여주면 되는데 필요 이상 탈탈 털어내는 사람도 있다. 나는 허심탄회란 말을 싫어한다. 원하는 것만 보여주자는 주의다."

    ―방송계에서 예능 센스 좋은 인물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실제 머리가 좋은가.

    "전혀. 초등학교 때 잰 I.Q는 119였다. 시행착오 끝에 늦게 깨닫는 편이다."

    ―방송 활동이 끊이질 않았다.

    "어떤 역할이든 '이건 윤종신이면 좋겠다'고 했을 때만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꾸준히 찾으니 '현역'인 거고. 매니저가 부탁해서 나를 프로에 끼워 넣을 때가 되면 깔끔히 관둘 생각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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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맛 들이면 본업은 제쳐놓기 십상인데, 해가 갈수록 윤종신의 곳간엔 차곡차곡 노래가 쌓여간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라디오 스타'를 10년 했다. 인기 비결이 뭘까.

    "우당탕탕 모여서 예측 불가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다른 성공 포인트는 '속물성'. (김)구라의 공이 크다. 학교 어디 나왔느냐, 재산 얼마 있느냐는 걸 대놓고 묻는다. 구라는 방송사(史)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X세대에게 윤종신은 최고 스타였다.

    "모르는 소리.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당신이 비슷한 성향 친구들과 소통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뿐. 그걸 나는 '1인 통계의 오류'라고 부른다. 요즘엔 소셜 미디어상 친구들만 보고 판단을 많이 한다. 두세 명만 좋아해도 전체가 좋아하는 걸로 착각하지만, 실은 그 나머지도 많다."

    ―창작자에게 중년은 장애 아닌가.

    "아니다. 40·50대가 크리에이터에겐 가장 좋은 시기라 본다. 20·30대는 흡수하고 경험하는 시기였다. 이제부터 할 얘기가 많다. 실패담도 많고. 윤종신 음악은 50대부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해도 40·50대에 기회가 많을 것 같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쪽을 경험한 건 우리 세대의 무기다."

    ―얼마 전 SM엔터테인먼트가 미스틱에 투자해 대주주가 됐다.

    "이수만 회장은 90년대 초부터 인사하는 사이였는데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월간 윤종신'이었단다. 실패해도 꾸준히 하는 걸 보고 '저놈 이상한 놈'이라 생각했단다."

    ―삼남매를 뒀다. 아이 교육도 창의적으로 하나?

    "교육은 선생님이 하고 가정은 최소한의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는 게 원칙이다. 요즘 부모들 보면 예순 살까지만 살고 말 것처럼 아이에게 너무 투자한다. 앞으론 백 살까지 살 텐데 그때 당혹감은 어쩔 건가. 아이도 중요하지만, 나와 아내(전 테니스 선수 전미라)의 삶도 중요하다. 엄마 아빠가 사는 모습 자체가 교육이다."

    ―냉정해 보인다.

    "다만 예의 바른 애로 키우고 싶다. 아내가 어른들께 무조건 인사를 시킨다. 만에 하나 때문에 '모르는 아저씨가 말 걸면 따라가지 마라' 하고 경계하는 것부터 가르치기보다는 인사성 좋은 따뜻한 애로 키우고 싶다."

    ―'너의 결혼식'(1992년) 같은 초창기 노래를 지금 들으면 어떤가.

    "예술 근로자로서는 엄청 고마운 곡이다. 덕택에 돈도 벌고 유명해졌으니. 창작자로선 큰 의미 안 두는 곡이다. 추억만 되팔아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도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데!"

    윤종신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월간 윤종신' 앱을 깔고 구독을 눌러 내 '정보'를 넘겼다. 윤종신의 요즘 고민이 압축돼 있다는 2017년 1월호 발표곡 '세로'를 틀었다.

    2017 월간 윤종신 1월호 - 세로

    '이 정도 살면 그럭저럭/ 관성의 힘으로/ 무덤덤한 마음으로 살 법한데/ 오 꿈틀대는 모난 삐딱함은/ 나를 울타리 밖으로 내던지네/ 아직 쉴 자격이 없는 나라며…'. 쉰을 앞둔 삐딱이의 무한 에너지가 고마워졌다.

    윤종신은

    1969 경남 진해 출생

    1990 O15B ‘텅 빈 거리에서’ 객원 가수로 데뷔

    1991 1집 앨범 ‘처음 만날 때처럼’ 발표

    1993 연세대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9 음반 기획사 ‘신스타운’(‘미스틱 89’ 전신) 설립

    2001 KBS ‘야한밤에’로 예능 본격 시작

    2003~2004 MBC 시트콤 ‘논스톱4’

    2007~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출연

    2010~‘월간 윤종신’ 시작, 매달 디지털 싱글 음원 발표

    2009~2015 Mnet ‘슈퍼스타K’

    2016 이태원 복합문화공간 ‘월간 윤종신’ 오픈

    2017 미스틱엔터테인먼트로 사명 변경, SM과 전략적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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