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사랑했던 남자… 새로운 희망으로 승화된 지난 20년의 아픔

    입력 : 2016.09.21 15:57

    로버트김의 편지

    로버트 김의 편지ㅣ로버트 김 지음ㅣ온북미디어출판그룹ㅣ344쪽ㅣ1만 4000원

    "수감 생활 동안 저는 날마다 대한민국의 신문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드넓은 세계로 나가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디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아웅다웅 싸우기 일쑤였지요. 그런 점들은 무척이나 저를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석방이 되고 나면 모국을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로버트 김의 편지'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6년 9월, 미국 워싱턴DC 육군 장교클럽에서 '한국 국군의 날' 행사가 열렸다. 행사를 주최했던 주미 한국대사관은 평소 북한 관련 정보 수집에 큰 도움을 주던 한국계 미 해군정보관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을 초대했다. 행사가 무르익던 그때 갑자기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정체는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관들이었다. 그들은 로버트 김을 국방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체포했고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형을 받았다.

    이 책은 2005년부터 저자가 매주 수요일 지인 및 후원자들에게 쓴 425통의 편지 중 80여 편을 골라 엮은 것이다. 한때 저자의 편지를 e메일로 받아보는 사람이 3만명에 이르기도 했다. 8년 넘게 계속되던 편지는 저자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는 바람에 2014년 5월 7일 425회로 중단됐다.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고 통탄하며 쓴 마지막 글의 제목은 '이게 나라인가, 모든 것이 교육 탓'이었다.

    저자는 책 속에서 긴 수감생활을 마치기 직전 양친을 모두 떠나보낸 애잔한 가족사부터 자유인이 된 소감 등 아픈 개인사를 털어놓는다. 또한, 선거에서 지면 미국에 '유학'하는 정치인들에게 "조국에 남아서 힘쓰라"고 조언하는가 하면 자녀교육을 위해 '기러기' 생활을 마다치 않는 부모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등 고국에 애정이 어린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미국의 주류 사회를 살다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가면서까지 사랑했던 조국이었기에 제3지대에서 바라본 저자의 관점은 냉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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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김./사진=최보식 기자

    저자는 책에서 "어떻게든 성공해 고국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주어진 삶을 지탱하게 했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 모국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만, 고급 정보에 목말라 하던 한국 무관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은 자신의 처지와 가족들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미안함에서는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진다.

    기나긴 수감생활을 마치기 직전 양친을 모두 떠나보낸 가족사가 눈에 띈다. 출소 6개월 전 부친이 별세한 데 이어 불과 한 달 보름을 앞두고는 모친마저 영면했다. 부친은 아들을 면회하러 갔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국에 돌아왔는데 저자는 "못난 아들 때문에 눈물 흘리시며 오직 자식 걱정만 하셨던 불효가 죄송스럽고 결국 효도 한 번 해드리지 못한 것이 씻을 수 없는 한으로 남았다"고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로버트 김 후원회 관계자들을 따로 불러 격려한 사실도 처음으로 공개한다. 노 전 대통령은 로버트 김 후원회장으로 활동한 이웅진 씨와 병어찜을 먹으며 면담했는데 이 씨는 후원회 뒷 이야기에서 "대통령께서 휴가 기간에 일부러 시간을 내셨는데 듣던 대로 소박했고 친근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난 11일 사건 20주년을 기념해 부인과 함께 귀국하면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글이 대한민국 미래 발전에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간첩이라는 오명을 쓰고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저자는 원망 대신 희망를 말하고 있다. 그동안 조국애(祖國愛)를 잊고 살았거나, 절망하기 쉬운 현실 앞에서 희망을 되찾는 계기가 필요한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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